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몽골 제국 (문단 편집) ==== 세계사의 등장 ==== 이들의 존재는 세계사라는 개념의 창출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세계지도와 세계지리 세계사 관련서적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이 이 시기부터였는데 15세기 초 조선에서 만든 세계지도에서는 아프리카 대륙 남단의 희망봉까지 등장하는데 이는 과거 몽골 제국에게 전해들은 세계지식에서 기반이 되었다.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은 원제인 세계의 서술에서 웅변하듯이 단순한 여행기가 아니라 자신의 여행을 통해 얻은 견문을 토대로 다른 자료를 참조하여 찬술한 세계지리지이자 박물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가 쿠빌라이 칸을 만났는지, 그가 실존했는지에 대한 의문은 이 책을 단순한 여행기나 견문록으로만 인식하였기에 나타난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실질적인 의미의 세계사 관념이 이 때 나타난 것에는 의미가 있는데, 훌라구 올로스의 라시드 앗 딘이 편찬한 집사가 바로 그것이다. 그는 훌라구 올로스의 7대 칸이 카잔 칸의 명령에 따라 몽골 제국의 역사를 편찬하였는데 그의 뒤를 이운 올제이투 칸으로부터 3부로 구성된 집사를 만들었다. 1부에서는 몽골과 몽골 제국의 역사, 2부는 아랍 인도 유다 중국 프랑크 투르크 등 몽골 제국 등장 이전까지의 유라시아 세계사, 3부는 세계 각지의 지리적 특징과 도시 및 산천을 각각 설명하고 있다. 3부는 소실되어 알 수 없으나 1부와 2부는 지금도 남아서 이제까지 볼 수 없던 세계사라는 새로운 개념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중국에게 몽골 제국의 치세는 중국의 경제를 극도로 악화시켰고, 대명(大明)이 중국에서 몽골을 몰아낸 이후에도 이들은 존속하여 1449년 몽골 부족 중 하나인 [[오이라트]]가 [[정통제]]를 포로로 잡는 [[토목의 변]]이 발생하고 1550년 몽골의 [[알탄 칸]] 이 북경을 포위해 [[경술의 변]]을 일으키는 등 중국을 지속적으로 위협했다. 이러한 조치는 중국에게 깊은 상처를 안겨 세계제국 하에서 최첨단 통상무역경제의 폐해를 접한 이들의 역설적인 구호를 통해 스스로 고립주의를 자초하는 원인이 되었다. 이는 조선도 마찬가지였으며 팍스 몽골을 통해 득을 본 것은 어이없게도 서유럽이었다. 결론은 알려진 것과 달리 몽골 제국은 [[원나라]]의 [[카간]]을 정점으로 한 느슨한 상호연대가 이어지고 있었으며 몽골 제국이 봉건제를 유지한 원인이었다고 볼 수 있다. 현대 사학계 연구에 따르면 고려의 원간섭기 또한 카간 직속의 예케 몽골 올로스 중에 하나로 인식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몽골 황족은 남녀공통으로 자신의 지분(올로스)으로 생활을 영위했는데, 기존 고려의 왕실과 고려로 시집간 공주가 올로스의 지분을 나누어 가진 것이라고 한다. 단 고려는 어디까지나 고려 왕실의 것이었기에 공주는 자신의 지분을 별도로 가지고 있었고 그것이 사후 높여진 것이 [[제국대장공주]]나 [[노국대장공주]]의 명칭의 실체였던 것이다. 여담으로 몽골 제국의 올로스 중에서 카간의 직계와 통혼한 외국 왕실은 고려 왕실뿐인데, 나머지 통혼은 칸의 후손으로 이루어졌으며, 청나라의 몽군기 보르지기트 씨족은 엄밀히 말해 칭기즈 칸의 동생인 [[동방 3왕가]]의 후손이다. 괜히 고려 왕실이 쿠릴타이에 참가하고 [[심왕]] 자리까지 받은 거 아니다.[* 다만 이는 쿠빌라이 칸 시절 세력이 지나치게 강해진 동방 3왕가에 대한 견제의미가 컸다고 한다.] 만일 고려가 이 당시 올로스들 중 하나로 인식되고 있었음이 사실이라면 [[1368년]] 주원장이 원 황실을 다시 [[고비 사막]]으로 몰아내고 [[명나라]]를 건국했을 때 동시대의 고려인들이 이를 그다지 반기는 분위기가 없고 오히려 미래를 걱정하는 기록이 더 많았던 것 역시 자연히 설명이 되는데, 당시 고려인들 입장에서는 대륙을 차지한 명나라 군대가 고려에 대해서도 어떻게 나올지 도무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실제 역사에서는 명나라가 이후 고려에 딱히 관심을 두지 않아 별 사건 없이 넘어갔으나 당시를 살아가던 고려인들 입장에서는 당연히 미래에 대한 불안이 앞섰을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